미군 공구육 – 천공
2011-10-30 23:55 (한국시간)
천공 기술을 습득한 김문석 같은 천공인이 천공지에 천공하던 IBM 029 천공기 <위키미디어>
재언이지만,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의 리 요새에 위치한 미국 육군 병참 학교의 보급 병과 교육은 약 4개월에 걸친 전과정이 빈틈없이 제대로 꽈악 잘 짜여져 있었다. 그냥 교실에 앉아만 있으면 저절로 졸업하게 되는 그런 안이한 교과 과정이 아니었다. 각 단원별로 철저하게 능력 위주였다. 훈련 교관의 간단명료한 강의를 듣고, 교본으로 체계적인 자습을 하고,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다.

단원별 필기 시험에서 일정한 점수를 따지 못하면 떨어지게 되고, 다시 홀로 자습을 마친 다음에 재시험을 치러야 하는 깐깐한 구조였다. 물론, 정신을 집중하여 그날의 단원을 일찍 끝내면 남는 시간은 얼마든지 자유였다. 학습실에서 사라져도 그만이었다. 외박하기 위하여 요새의 밖으로 나가도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다. 알아서 공부하게끔 만드는 콩고물(Incentive)[인]이었다.

미군의 거의 모든 군수 물자는 육중한 전차부터 작은 소총탄 하나까지 명확하게 즉각 인지되도록 고안된 체계적 국가 물자 번호(NSN)(National Stock Number)[셔널 스 버’]를 갖고 있었다. 물품(Item)[이럼]의 명칭(Nomenclature)[우먼클러처’]과 묘사(Description)[디스크쎤]도 명확했다. 가변 정보인 단가(Unit Price)[닡 프이쓰]와 수량(Quantity)[니티]도 명확했다.

보급(Supply)[써플이] 임무(Duty)[리]의 핵심은 기백만 명이나 되는 미국 군인들이 필요로 하는 온갖 대소 군대 물자들의 공급이 끊기는 일이 없도록 차질 없이 제대로 관리하는 일이었다. 고 스티브 잡스와 와즈니액이 개인용 계산체(PC)(Personal Computer)[’쓰널 컴러’]인 사과 하나(Apple I)[]를 지구상에 내놓기도 반년쯤 전이었다. 해서, 보급 행정은 수작업이었다.

그래도 탁상용 계산기(Desktop Calculator)[스ㅋ탚 큘레이러’]라도 있었기에 참 다행이었다. 각급 지휘관은 주어진 예산(Budget)[짙] 안에서 각자 필요한 물자의 흐름 즉 들어오고 나가는 상황을 재고 원장(Inventory Ledger)[토리 저’]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여, 전문적 회계 훈련을 받은 보급병들의 도움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허술한 빈틈이 거의 없었다.

각급 부대 보급병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군수 물자 관련 기초 자료(Data)[이라]는 국방성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신속한 군사 우편으로 전달되는 대략 100장 정도의 어른 손바닥만한 직사각형 극소사원(Microfiche)[이크로씨] 즉 극도로 축소된 사진 원본들 속에 일목요연하게 수록되어 있었다. 기계로 확대해도 글자와 숫자들이 깨알 같았는데, 수십만 개 물품의 정보였다.

기초 전투 훈련소에서 만난 이타적 조셉 스미스에게서 받은 진짜 영어 말소리에 관한 단기 야간 과외 공부 덕택으로 훈련 교관의 각단원 강의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음은 물론, 고국에서의 고교 2학년 여름 방학 한 달 동안에 무서운 독기로 혼자 독파한 정통 종합 영어란 비교적 어려운 참고서를 통해 다져진 탄탄한 영문법 기초의 덕분으로, 후반기 교육은 실로 누워서 빵 먹기였다.

거의 매일 남들보다 두어 시간씩 일찍 하루 분량을 끝냈지만,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일단 나가면 쓸데없이 돈을 써야 되는 형국이었는데 나름대로의 큰 뜻을 품고 매월 봉급 거의 전부를 모조리 저축하고 있었기에, 학습실 주위만 맴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고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첨단 장비였다. 병참 학교 내부의 조그만 쪽방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항상 놀고 있는 듯했다.

알고 보니, 그 당시로는 최첨단이었던 집채나 자동차만한 엄청난 크기의 대형 계산체(Mainframe Computer)[레임 컴러’]를 작동시키기 위하여, 옆으로 길쭉한 원고지에 손으로 작성한 물렁체(Software)[트웨어’] 내용을 한줄한줄 한자한자 기계가 읽을 수 있도록 작은 구멍들로 전환하는 작업을 가능하게끔 만드는 IBM 029 천공기(Keypunch Machine)[펀치 머인]였다.

김문석이 개인적 호기심을 보이자, 마침 그 곁을 지나던 생판 모르는 장교 하나가 간단한 설명을 해줌과 동시에 언제든 마음대로 갖고 놀도록 특별히 허락했다. 사용서(Manual)[뉴얼]는 물론 실습을 위한 누렇고 빳빳한 직사각형 천공지(Keypunch Card)[펀치 ’앋]도 잔뜩 넘겨주었다. 한 장에 한 줄로 80개의 글자나 숫자를 타자기처럼 찍으면 각자 밑에 구멍도 뚫리는 방식이었다.

철커덕 드르륵…드르륵 철커덕 – 인간의 외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뭇사람 속에 있을 때의 묘한 초현실적 외로움 말이다. 자신의 중심과는 거의 아무 상관도 없는 온갖 잡념에서 오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온통 불협화음 뿐인 무의미한 잡음 현장을 일단 탈피하게 되고, 뭔가에 몰두하게 된다. 맞다. 그런 외로움을 지우려고, 그때 그도 누런 종이에 구멍을 뚫는 단순 작업에 빠지고는 했다.

문득, 해가 졌는데도 캄캄한 교실 구석에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혼자서 고물 영문 타자기를 마구 두드린 학창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도 절친의 1분 강의를 바탕으로 열 손가락 타법을 혼자 터득한 이후, 외로울 때면 반원도 아닌 영어반에 허락 없이 들어가 홀로 타자 연습에 몰두했었다. 그 덕으로 실은 상당한 수준의 천공인(Keypunch Operator)[펀치 퍼레이러’]도 될 수 있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한국에 파견되었을 때는 축구장만한 크기의 미군 통신 창고들 네 개에 가득찬 장비와 부품들의 전산화를 위한 천공 임무도 완수를 했고, 명예 제대 후에는 이곳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잠수함 조종실 생산 업체에서 천공인으로 일하면서 대학도 다녔다. 각설하고, 헌데, 병참 훈련병들 중에 그만이 방과 후에 구멍을 뚫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순진한 그만 몰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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