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빈'으로 대통합 이끌어낸 레이건, 박근혜는?
2013-01-11 14:04 (한국시간)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재임시 자신의 서명과 함께 젤리빈을 외국 지도자들에게 선물했다.<사진=CNN 캡처>
지난 2004년 6월 타계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성조기와 함께 젤리빈 캔디가 한 통 놓여있어 세계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젤리빈이 왜 일까.

영화배우 시절 레이건은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살다시피 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뛰어든 그는 이미지 변신을 꾀해야 했다. 담배를 끊으려 무진 애를 썼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젤리빈이다. 강낭콩 모양의 캔디는 무엇보다 쫀득쫀득해 씹히는 맛이 좋았다. 주지사가 되고서도 젤리빈을 늘 곁에 두고 입이 심심하면 색깔을 맞춰 몇 알씩 먹었다. 회의 때는 혼자 먹기 뭐했던지 젤리빈 유리병을 돌렸다.

레이건에게 젤리빈을 공급한 메이커는 젤리 벨리(Jelly Belly). 독일계 이민자가 창업한 이 회사는 당시 천연향으로 젤리빈을 만들었다. 레이건 덕분에 '국민 간식'이란 애칭으로 불릴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주지사 임기를 끝낼 즈음 레이건은 젤리 벨리 회장에게 감사편지를 썼다. "회의할 때 젤리빈 통을 한바퀴 돌리지 않으면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 당선 뒤에도 젤리빈은 백악관 필수품이었다. 1981년 취임식 때 젤리 벨리는 성조기의 색깔에 맞춰 레드 블루 화이트의 젤리빈 3200kg을 백악관에 보내 축하해줬다. 알갱이 280만개나 되는 엄청난 양이다.

젤리빈은 백악관 회의 때 윤활유 기능을 했다. 어느 장관이 병 속에서 한 개를 골라 먹자 대뜸 "당신은 건국이념에 투철한 사람인 것 같다"고 치켜세웠다. '이 플러리버스 유넘(e pluribus unum) 곧 '여럿이 모여 하나'라는 미국의 건국 이념에 빗대 우스개를 던진 것이다.

한바탕 폭소가 터져나온 후 회의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돼 중지를 모을 수 있었다. 괴한에 총을 맞고 응급실로 실려가면서도 "내가 총알을 얼른 피했어야 했는데…"하며 아내 낸시에게 너스레를 떤 레이건의 유머감각은 젤리빈과 함께 빛을 발했다.

젤리빈은 서방세계의 결속을 다지는데도 유용하게 쓰였다. 세계 정상들에게 백악관 문양이 박힌 젤리빈 한 병씩을 선사하며 다양한 인종과 국가들이 하나로 뭉치면 '악의 제국' 소련을 총 한 방 안쏘고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역설했다. '젤리빈 외교'의 절정은 베를린 장벽 앞에서의 연설이었다. "고르바초프여 당장 이 벽을 허물라"고 호통쳤다. 몇년 후 동서냉전과 분단의 상징물인 장벽은 무너져 내렸다.

레이건은 국내정치에서도 젤리빈을 지렛대로 삼아 상대를 설득하고 회유했다. 법안이 의회에서 난항을 겪으면 민주당 지도부를 백악관으로 불러 함께 젤리빈을 먹었다. "색깔마다 새콤달콤 맛이 제각기 다르지만 입 안에 들어가면 하나가 됩니다. 공화 민주당도 추구하는 목표는 오직 하나 국민을 기쁘게 하는 게 아닙니까."

재선 때는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들이 공화당 후보인 레이건에게 몰표를 던지는 유례없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레이건 민주당원'이란 용어는 이래서 생겨난 것이다. 어쩌면 젤리빈은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엮는데 큰 역할을 해냈지 않았나 싶다.

박근혜 당선인의 향후 5년 국정의 방향을 관통하는 키워드도 '대통합'이다. 세대간의 골을 메우고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며 인사 탕평책을 내세워 또 한번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자는 게 그의 슬로건이다. 그가 청와대 테이블에 어떤 '간식'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구미가 당긴다.


박현일 기자, uko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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